월해담

5막 5장

그리고 춘화


W. 롤라 


     

    

 

     

BGM: 불꽃심장 / Tempest







    세수를 하고 나오니 오세훈이 소파에 누워 있었다. 나는 소파의 팔걸이에 걸터앉아 그의 머리를 툭툭 쓰다듬었다. 그런 날 힐끗 본 그가 채널을 돌렸다.





    “회사에는 언제 나올 생각이야?”

    “다시 원래 팀으로 보내주면.”

    “안 보내주면?”

    “관둘 거야.”

    “관두고 뭐 하게?”

    “뭐라도 할 게 있겠지. 이 세상에 내가 할 일 하나 없겠냐.”





    내 말에 그가 피식 웃었다. 그건 그렇지-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이내 천장을 향해 돌아 누웠다. 그리고 소파 끝자락에 있는 담요를 가져다 덮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서 자게?”

    “그럼?”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인상을 팍 썼다. 





    “장난해? 침대 두고 왜 소파에서 자?”

    “침대 하나밖에 없잖아.”

    “뭐야. 갑자기 내외하세요? 잔말 말고 들어와.”





    나는 TV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 날 물끄러미 바라보던 오세훈이 마지못해 방으로 따라들어 왔다. 나는 세수를 하느라 살짝 젖은 머리칼의 물기를 툭툭 털면서 침대에 누웠다. 오세훈 역시 아까 씻고 이미 내 옷 중 편한 걸 찾아 입은 상태였다. 나는 베개를 팡팡 치고 누웠다.





    “안 오냐?”

    “가.”

    “아니, 근데 웃기네. 여기서 살아도 되냐고 했으면서 그럼 계속 소파에서 자려고 했단 말이야? 내가 그렇게 야박한 집주인 같아?”





    오세훈의 입가에 피식 미소가 흘렀다. 나는 그를 향해 돌아 누웠다. 이불을 걷고 들어오던 그가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조용히 웃었다. 나 역시 헤실거리면서 웃게 됐다. 손을 뻗자 그가 내 손목을 그러쥐었다. 그리고 내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옆에 누웠다. 나는 다른 손을 뻗어 리모컨을 잡았다. 방의 모든 불을 끄고 무드등만 켜놓자 그의 얼굴이 꼭 달밤에 비친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가 조심스럽게 내 얼굴을 매만졌다. 그의 손끝이 내 이마와 눈가, 코 끝, 그리고 입술을 만질 때마다 온몸에 찌릿 전기라도 통하는 기분이었다. 





    “준면아.”

    “... 응.”





    오세훈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요한 눈동자에 나를 담을 뿐이었다. 그러다 그가 생긋 웃었다.





    “거짓말 해서 미안해.”





    그 말에 피식 웃게 됐다. 나는 내 얼굴을 어루만지는 손을 잡아 깍지를 꼈다. 그리고 그의 보드라운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나 되게 서운했어, 알아?”

    “... 미안해.”

    “기억 다 하고 있었으면서 나 모른 척 하고. 내가 너 끌고 다시 갈까봐 걱정했어?”





    오세훈이 간지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걱정하던 게 무엇인지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그 곳에 가면 우리 둘 다 위험해지는데 혹시나 내가 거기에 미련이 남아 계속 가자고 할까봐 두려웠던 거겠지. 물론 오세훈의 말을 듣기 전까진 그런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제는 아니었다. 나는 오세훈의 손을 꼭 잡았다. 





    “계속 같이 있을 수 있는 거지?”





    그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꼭 봄날에 듬뿍 쏟아지는 햇살 같았다. 그도 아니라면 부드러운 깃털 같기도 했고, 또 그도 아니라면 잔잔한 바람결 같기도 했다. 모든 것이 다 오세훈다운 부드러움이었다. 그는 한참동안 날 바라보다가 손을 뻗었다. 그리고 내 볼을 어루만지면서 입을 맞추었다. 자연스럽게 내 입을 벌리고 들어온 그의 혀가 말캉했다. 눈을 감으며 천천히 돌아 누우니 그가 내 위에 올라탔다. 나는 그의 목덜미에 팔을 건 채 부드러운 입술을 느꼈다. 





    “...”

    한참동안 혀가 얽히는 소리만 나던 침실에 다시 고요함이 찾아왔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도 서로의 얼굴을 찾았다. 희미한 달빛 아래 빛나던 그 때처럼, 오늘은 따스한 무드등 위로 우리의 모습이 보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시 입술부터 찾았고, 침대 아래로 우리의 옷이 하나씩 툭, 툭, 떨어졌다.





월해담

5막 5장

그리고 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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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대에 거의 기절하듯이 누운 건 새벽 두 시쯤이었다.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 할 힘도 없었는데, 오세훈은 뒷정리까지 싹 다 하고 핸드폰으로 알람까지 맞춘 뒤 조용히 잠이 들었다. 나는 그의 품에 안겨 잠을 청하면서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만 나왔다.


    그러다 눈이 떠진 건 네 시쯤이었다. 입 안이 텁텁하고 목이 타들어갈 것 같은 걸 보니 목이 말라 잠이 깬 것 같았다. 나는 조심스레 침대 아래로 발을 내렸다. 그리고 오세훈이 의자에 깔끔하게 걸쳐둔 옷을 들고 침실 밖으로 나왔다. 옷을 대충 입고 물을 한 잔 마시니 그제야 좀 살 것 같았다. 나는 정수기 앞에 서서 물을 마시다가 멈칫했다. 거실에 놓인 화분의 잎사귀가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어디에서 바람이 부나?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걸음을 옮겼다.


    거실로 나가니 정말 테라스로 향한 문이 열려 있었다. 내가 저걸 열어 뒀었나? 나는 커피 테이블 위에 컵을 내려놓고 테라스로 나갔다. 그런데 창문이 아예 활짝 열려 있었다. 저건 또 왜 열려 있어- 싶은 순간, 나는 변백현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난간에 아무렇지 않게 걸터 앉은 채 가볍게 턱을 괴고 있었다. 입고 있는 옷은 깔끔한 도포였다. 갓까지 쓰고 있는 변백현은 나를 보고 씨익 웃었다. 





    “오랜만.”





    살랑살랑 손까지 흔드는 걸 보니 정말 진짜는 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아 멍하니 있다가 인상을 썼다.





    “귀신도 아니고 뭐야?”

    “귀신이라니. 신을 그리 모독하면 쓰나.”





    하하하- 하고 가볍게 웃은 녀석을 향해 다가갔다. 변백현은 특유의 그 여유가 가득한 표정으로 날 보다가 생긋 웃었다.





    “자, 가자.”





    나는 내게 내밀어진 손을 빤히 바라보았다. 





    “... 뭔 개소리야?”

    “이제 때가 되었다.”

    “그러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고. 너 지난 번에 작별 인사 하고 갔어. 기억 안 나? 이제 다 끝난 거라며.”

    “그런 줄 알았지.”





    내게 내밀었던 손을 거둔 변백현이 쭈욱 기지개를 켰다. 그러더니 이내 그대로 아래로 몸을 뒤집었다. 그에 놀라기도 잠시, 녀석은 공중에 둥둥 뜬 채 테라스 밖에서 날 바라보았다. 전혀 힘들어 보이지도 않았고, 전혀 두려워 보이지도 않았다. 





    “이젠 내가 필요해.”

    “...”

    “네가, 있어야 해.”





    나는 난간을 짚은 채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어째서?”

    “오세훈이랑 약속했어.”





    오세훈, 이라는 말에 변백현의 표정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그리고 한참동안 날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 갑자기 막힌 둑이 터지듯,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난간을 꼭 쥔 채 인상을 찌푸렸다.





    “왜 웃어?”

    “하하하! 정말 이 녀석들을 어찌 하면 좋을지!”





    미친 사람처럼 웃던 변백현이 갑자기 웃음을 뚝 멈추었다. 그러더니 확 몸을 숙였다. 공중에서 깃털처럼 떠다니던 그의 얼굴이 바로 내 코 앞까지 날아왔다. 그에 놀랄 새도 없었다. 녀석은 내 얼굴 바로 앞까지 다가와 날 보며 씨익 웃었다.





    “내가 맞춰보랴?”

    “...”

    “거긴 너무 위험하다지?”

    “...”

    “돌아가면 네가 죽을 수도 있다고 하지? 그러니 안전한 여기에서 둘이 같이 있자고 한 게지? 그 곳에서 죽는 건 이 곳의 너희와는 상관없다- 이런 말도 했겠지?”





    변백현이 내려놓는 말 하나하나 틀린 게 없었다. 모두 오세훈이 한 말이었다. 나는 숨을 들이마신 상태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못 했다. 변백현은 그런 날 보다가 한 쪽 입꼬리만 올려 웃었다. 그의 눈이 내 온몸을 관통하는 기분이었다.





    “널 살리려고 아주 발악을 하는구나.”





    그의 두 손이 내 볼에 닿았다. 그런데 그 손에서는 전혀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얼음보다 더 차가운 게 있다면 딱 이거일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의 손길이 닿자마자 온몸이 얼어붙는 듯 했고, 그래서 나는 꼼짝도 못 한 채 그와 시선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틀렸어.”

    “...”

    “어느 한 쪽이 죽든, 결국 둘 다 죽어. 그 곳의 오세훈이 죽으면 이 곳의 오세훈도 죽고, 그 곳의 김준면이 죽으면, 너도 죽어.”

    “... 뭐?”

    “하지만 녀석은 널 이 곳에 붙잡아두고 자기 혼자 돌아갈 생각이었던 게지. 그리고 너는 구하고 죽을 생각일 게야. 그럼? 이 곳의 너만 남게 되겠지? 이제 두 곳을 오갈 방법이라곤 나밖에 없으니 넌 다시는 오세훈을 보고 싶어도 못 볼 테고.”





    나는 잔뜩 커진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변백현은 씨익 웃으면서 내 이마에 제 이마를 가져다댔다. 그리고 차분히 눈을 감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게, 네가 정녕 원하는 것이냐.”





    그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오세훈 없이? 나 혼자 살게 되는 거라고? 오세훈은 결국 나를 구하려고 거짓말을 한 거라고? 나는 다시금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하려고 애썼다. 그 때, 뒤에서 별안간 목소리가 들렸다.





    “놔 줘.”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 곳에는 오세훈이 있었다. 오세훈은 내 어깨 너머의 변백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여전히 테라스 바깥의 공중에 둥둥 떠 있던 변백현이 큭큭 웃으며 내 볼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자네, 화가 많이 났군.”

    “... 돌아가.”

    “그럴 것이다. 물론, 이 녀석과 같이.”





    순식간이었다. 변백현이 내 목을 가볍게 낚아챘다. 힘도 들이지 않고 한 손으로 내 목을 그러쥔 녀석때문에, 나는 공중에서 그의 손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런 변백현의 움직임에 오세훈이 달려와 난간을 잡았다. 나는 내 목을 조르는 변백현의 손을 겨우 잡았다. 발 닿는 곳 하나 없는 공중에 나는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변백현은 캑캑거리는 나를 보면서도 표정 변화 하나 없었다. 그리고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오세훈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나무를 베어냈다.”

    “... 뭐?”

    “그게 누구 짓인지는 네 놈이 더 잘 알겠지.”





    오세훈을 바라보는 변백현의 시선이 날카로웠다. 나무가 없어져? 누가? 대체 왜? 그 나무가 없어서 이제 오갈 방법이 변백현밖에는 없다는 거야? 하지만 그런 건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나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그런 나를 여유롭게 힐끗 바라본 변백현이 생긋 웃었다. 그리고 다시 오세훈을 바라보았다. 오세훈은 난간을 쥔 채 분노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간의 정을 봐 최대한 널 배려해주려고 했다. 허나, 그러자니 무고한 죽음이 너무 많아지는 게 아니겠나?”





    생긋 웃은 변백현이 내 목을 쥔 손에 더 힘을 주었다. 





    “나는, 인간들이 죽는 게 싫어.”

    “크읏... 읏...”

    “그만 해... 제발...”





    오세훈의 목소리가 잔뜩 떨리고 있었다. 오세훈은 두 손을 모아 변백현에게 빌고 있었다. 하지만 변백현은 그런 그를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그 모습만큼은 정말 감정 따위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얼굴이었다. 





    “제발... 제발... 준면이는 살려줘...”

    “...”

    “준면이만은...”

    “늦었어.”





    그리고 변백현이 내 목을 쥔 손을 확 끌어당겼다. 어느새 제 코 앞까지 날 데리고 온 변백현이 씨익 웃었다.





    “다시 죽을 준비 됐어?”





    그 말을 이해할 새도 없었다. 변백현은 그 말을 끝으로 내 목을 쥔 손을 확, 놓아버렸다. 갑자기 숨을 쉴 수 있는 공기가 밀려옴과 동시에 나는 아래로, 아래로, 떨어졌다. 떨어지면서 마지막으로 본 것은 나를 붙잡으려 함께 뛰어내린, 오세훈이었다.


    그러다 번쩍, 눈을 떴다. 내 눈 앞에는 변백현이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역시 서울이 아니었다. 고즈넉한 한옥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고, 그 위로 밤의 달빛이 내려앉아 있었다. 변백현은 그 달빛을 몸에 두른 채 뒷짐을 지고 날 보고 있었다. 내 옷차림을 살펴보니 조선 시대에서 입고 있던 옷과 같았다. 다시 서울로 넘어오기 전에 있던, 오세훈의 방 앞이었다. 시간은 흐르지 않을 것이라 하더니 정말 그 때 그대로인 것 같았다. 나는 멍하니 변백현만 보다가 허겁지겁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우당탕 소리를 내며 오세훈의 방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문이 부서져라 쾅, 여니 그 안에는 오세훈이 있었다. 하지만 죽은 사람처럼 누워 있지도 않았고, 언제 일어날 지도 모를 잠을 자고 있지도 않았다. 오세훈은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 나를 바라보았다. 오세훈의 표정은 공허하기 그지없었다. 나를 보는 맑은 얼굴에 눈물이 뚝, 떨어졌다. 나는 한참동안 그를 바라보다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리고 달려가 그를 꽉 끌어안았다. 내게 안긴 채 가만히 있던 오세훈이 천천히 팔을 들었다. 그리고 나를 품에 안았다. 내 어깨에 고개를 묻은 오세훈의 울음이 귓가에 내려앉았다.





    “미안해...”





    오세훈은 나를 끌어안고 끝없이 울었다. 그의 눈에서 쉴 새 없이 눈물이 떨어졌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구해주지 못 해서... 미안해...”





    그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나는, 너와 함께 죽을 준비가 됐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를 구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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